내 생각들

인간 발전의 원동력

메롱씨티 배드맨 2009. 1. 29. 15:30

호모 에렉투스가 살고 있는 구역쪽에 갑자기 거대한 산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호모 에렉투스 무리는 잡아놓은 사슴들을 모두 버리고 산불을 피해 달아났다.

얼마후 산불이 모두 진화되어 호모 에렉투스가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왔을땐 이미 모든것이 다 타버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호모 에렉투스가 사냥을 위해 나섰을때, 이미 숲이 모두 타버려서 동물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굶주린 호모 에렉투스들은 평소엔 절대로 먹지 않는 불타 죽은 사슴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타버린 겉 껍질을 벗겨내고 안쪽의 살을 도려내어 입안에 넣는 순간 호모 에렉투스들에겐 놀란운 일이 벌어졌다.

질긴 생고기와는 다르게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진 육질과 피비린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려 단맛까지 나는 익은 고기를 먹는 순간이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다시 한번 산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산불에 타 죽은 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로 산불은 나지 않았고, 호모 에렉투스는 실망하게 된다.

그렇게 일년이 지난 어느날 건기가 되어 풀이 바싹바싹 말라버린 들판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났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 작은 불꽃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불꽃들이 얼마후엔 거대한 산불이 되어 숲을 다시 태우기 시작했고, 호모 에렉투스는 일년만에 맛있게 익은 고기를 먹을수 있었다.

그후로 호모 에렉투스들은 작은 불꽃들을 가지게 되었고, 잡아온 고기를 익혀먹기 위해 이 불꽃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불을 다루게 되면서 호모 에렉투스는 불꼿을 이용하여 추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보다 더 넓은곳(추운곳)으로 사냥을 떠날수도 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인가?

 

호모 에렉투스가 불꽃을 발견하여 불을 이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익은 고기의 그 맛을 다시 느끼고자 불꽃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익은 고기의 그 맛의 감동이 호모 에렉투스에게 무서운 공포였던, 불을 다스리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시이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향신료가 본격적으로 유럽에 유입되게 된다.

밋밋하던 음식에 놀라운 향을 내는 이 인도산 향신료들은 유럽의 입맛을 순식간에 사로잡아 버리고 만다.

서기 1세기의 역사가 플라니우스는 로마인이 향신료 같은 아무 영양가도 없는 것에 한해 5000만 세스티우스를 낭비하고 있다고 말 할 정도로 향신료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중세시대 파리에선 향신료는 e`pice 로 불리였는데, 이 말은 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고 한다.

 

1453년 5월 29일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의 동방 교역로는 완전히 막혀버리고 만다.

그동안 아랍상인들과의 동방무역으로 인도산 향신료를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아왔던 이태리의 도시국가들도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동로마 제국에 무역의 대부분을 의존하던 제노바는 IMF의 광풍이 몰아치고 국가 부도의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크리스토버 컬럼버스,

그는 아랍상인들의 동방교역로를 통해 인도산 향신료를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서쪽으로 항해하여 인도에 도착하여 인도와 직접 향신료 교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그리하여 1492년 컬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위의 두가지 예를 들어보았다.

 

인간발전의 주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로 감동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먹었던 그 익은 고기 맛의 감동,

유럽인이 빠져 들었던 그 향신료 향의 감동,

힘과 무력의 시대에 논리와 덕으로 힘과 무력을 무력화시켜버린 유학자의 감동은 이후 동양 세계의 성격을 바꿔놓고 만다.

 

수많은 예가 있겠지만, 인간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들은 바로 위와 같은 감동들이였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기술 만능주의, 물질 만능주의 사상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으면서 인간 근본의것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결국 인간 그 본원의 것이 언제나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전 타이슨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쌈잘하는 망나니였던 타이슨을 데려다 훌륭한 인간이면서 훌륭한 권투선수로 바꿔 놓은 것은 그의 스승 커스 디마토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타이슨이 자신 영혼의 스승을 커스 디마토라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아마도 타이슨이 자신의 스승인 커스 디마토로 부터 물려받은 것은 자신의 영혼을 울리는 감동이지 않았을까?

그가 단순히 복싱 기술 정도 배웠다면 그를 과연 영혼의 스승이라고 불렀을까?

 

인간을 변화시키는것 또 발전시키는 그것은 놀라운 기술, 많은 재물도 아니고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