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역사

케리비안의 해적

메롱씨티 배드맨 2006. 7. 16. 14:01



조니 뎁이나 올랜도야 뭐 워낙..

오만과 편견에서 참 괜찮아 보였던 키이나 나이틀리, 볼륨만 좀 있었어도 안젤리나 졸리인데..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역시도 뻔한 스토리의 고전적 스타일의 영화지만서도 역시나 살아남는 고전은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재미와 감동이 있는것 같다.

 다만 울랜도가 잠수함 승무원으로 변신한것은.. 시대에 따른 보너스 옵션???

 

세계적으로 해적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은 몇군데로 한정되어 있다.

고대에 지중해 문명시대엔 발칸반도와 에게해 주변, 아시아 시대엔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말라카 해협, 그리고 콜롬버스의 발견이후 아메리카와 유럽을 잇는 카리브해, 이중에서도 카리브해 만큼 해적이 활동하기 좋은곳은 없다.

 에게해는 해안을 따라 이태리와 서아시아 이집트를 잊는 연안 항로에서 정부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일부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한 해적이 주로 활동했지만, 근거지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육지로 부터 진압이 들어온다면 금방 무너져버렸다.

 말라카 해협은 사실 너무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이기에 해적질에 가장 좋은 장소이면서도 해적이 크게 활동하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 캐리비안으로 검색했던니 모조리 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만 나오더라.. >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과열된 식민지 쟁탈전을 중재하고자 로마교황의 중재로 토르데시야스 섬을 기준으로 서쪽은 스페인, 동쪽은 포르투갈이 갖기로 하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한다. (재수없는 새끼들..)

 당시만 해도 북아메리카 항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미로 가기 위해선 거대한 대서양을 북동에서 남서로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그 거리가 상당하여 물이나 보급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콜럼버스의 항로를 따라 우선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의 섬들을 거쳐 남미의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는 해로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서 어마어마한 착취로 많은 보물과 자원을 착취한 선례를 충실히 따른 그 후의 침략자들은 역시나 남미에서 엄청난 양을 물자를 유럽으로 실어나른다.

 그러다 보니 육지로부터의 공격 위헙도 없고 안전한 은신처 마련에도 용이하고 또한 많은 물동량이 발생하는 이 카리브해 만큼 해적질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곳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폰카로 찍은 골드하인드호의 복원선>


 

엘리자베스의 해적선 골든하인드호

 엘리자베스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서로 닮은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복자매인 메리에게 수년간의 감금과 핍박을 받으며 자란 엘리자베스와 헨리왕의 신교를 믿는 댓가로 메리여왕으로 부터 부모를 잃은 드레이크,

 메리의 목을 자른 엘리자베스와 메리의 남편인 펠리페의 무적함대를 박살낸 드레이크,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적이자 영국이 대서양의 패권을 스페인의 무적함대로 부터 빼앗은 해군제독이다.

 왕위에 올라 돈 한푼 없는 엘리자베스를 위해 스페인의 상선에 대한 해적질을 일삼아 엘리자베스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사실 드레이크의 해적질이 엘리자베스와 대영제국의 시초라고도 할 만 하다.

 




                                              <한 개의 마스트 전후에 큰 종범을 단 커터선, 복원된 르나르호>

 


 나폴레옹의 해적선 르나르호

 나폴레옹은 숙적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브리튼섬으로의 도항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생말로 항에서 쉬르쿠프를 만나다.

 쉬르쿠프는 브리튼으로의 도항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그 이후 쉬르쿠프는 작은 커터선 선단을 이끌고 영국의 상선들을 인도양에서 수없이 침몰시키고 나포한다.

 영국은 해적으로 인해 불과 5년간 2,300척의 배를 잃는다.

 비롯 나폴레옹의 브리튼 섬 도강을 도와주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영국에게 타격을 입히려한 나폴레옹의 의지를 가장 충실히 따라주었다.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그가 새로 건조한 두척의 배의 이름을 한척은 나폴레옹호, 한척은 황제호로 명명한다.

 




                                                                                 < 위더호의 모형배 >


 

 진짜 카리브해의 해적선 위더호

 샘 벨러미는 카리브해에서 해적질로 성공한 해적이다.

 그가 나포한 선이자 이후에 그의 기선이 된 위더호는 위의 국가공인 해적이 아닌 순수한(?) 해적이다.

 17세기말의 영불전쟁, 18세기초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해적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후 전후 실업자가 된 수많은 해군들이 해적이 되면서 해적의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위더호는 1697년 자메이카 해적회의에 의해 의결된 해적규정에 따라 노획물 분배, 해적질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했으며 인종간 차별도 없어서 흑인도 다수 있었다.

 해적 역사상 가장 많은 보물을 실은 것으로 알려진 이 위더호는 샘 벨러미가 은퇴 생활을 보내려고, 애인 마리아가 기다리는 보스톤으로 귀항하던중 허리케인에 의해 침몰했다.

 1984년 10년간 이 위더호를 찾기위해 전재산을 다 버리고, 파산직전에 와 있던 배리 클리포드에 의해 발견된다.

 전체 보물중 6/1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도 그 양이 엄청났다고 한다. 많은 유물은 배리 클리포드가 세운 위더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