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학생선언문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첫 문학시간때였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절반이나 지나서야 헐레벅떡 들어오셨다.
그러면서 몇가지 주의사항이라며 일러주셨다.
첫째는, 자기는 집이 매우 멀기 때문에 10시 이전 수업때는 자기가 안나타날테니 교무실로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고,
둘째는, 자기가 집필한 문학 참고서를 꼭 사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 매우 옹색했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참고서를 안 샀고, 그후로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사랑의 매"를 사랑이 넘쳐나도록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이 짠했는지 친구가 너덜너덜해진 그 참고서 하나를 내 책상위에 던져놓고 갔다. 도서실에서 하나 훔쳤단다..
어쨌든, 책 읽기 좋아했던 나는 열심히 그 참고서를 읽었고, 아주 멋진 글도 몇개 건졌다.
학교입구에는 흰색탑이 하나 있었는데,
생긴 모양상 우리가 "X알의 진리탑"이라고 불렸던, 그 탑을 볼때마다 그 참고서 속에서 건진 멋진 글 하나가 생각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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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깊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糾彈),광정(匡正)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천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傳橫)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이다.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던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은 헤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기간은 자유다. 우리에게서 자유는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戰場)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全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을 발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壟斷)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을 무시한 전제 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빡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懺屍)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學究)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1캄캄한 밤중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을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 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학생 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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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는 서울대뿐 아니라 몇몇 대학의 4.19 학생선언문이 실려 있었으나,
나는 이 선언문이 좋았다.
옛 사람들이 써놓은 글을 보면 멋지고 아름다운 글이 많은데, 이글 역시 힘이 넘치고 속이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첫 구절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깊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지금 당장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이 멋진 문장이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후로 한참이 지난후에 누가 이글을 썼는지 또 그분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찾아봤다.
1960년 서울대 문리과 2학년생, "신진회"라는 좌파동아리 회원이였던 이수정이란 분이 썼다고 한다.
이 신진회는 1957년에 당시 회원이였던 류근일씨가 "모색-무산대중을 위한 체제에로의 지향"이라는 공산주의 찬양 논문을 발표했다가 구속 기소되고 일시 해산되었다, 다시 재건됐던 단체라고 한다.
이 류근일씨는 믿기 힘들겠지만, 조선일본의 전 주필이다...... (세상 참 모를일이다...)
그런데 이 류근일씨만이 아니라 위 글을 쓴 이수정씨 역시나..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주도한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때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며 이 사건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결국 이 멋진 문장을 썼던 분은 후일에 지독한 언론탄압의 선봉에 섰고 장관이 되자 정치공작에까지 앞장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