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바토리
<엘리자베스 바토리!>
1560년에 태어나 처녀의 피로 목욕하는 여인으로 잘 알려진, 드라큐라와 동향인 트란실바니아의 성주이다.
당시 젋은 여인을 잡아다 그 피로 목욕한다는 소문의 진위여부를 가리고자 이에 기습 수색을 단행해 성안에서 핏빗 목욕조와 젋은 여인들의 사체를 수거했다고 한다.
그후로 어찌되었는지..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영 귀차니즘이..
어쨌건 헝가리 정부의 심문에 의하면, 우연히 젋은 여인의 피가 얼굴에 닿자 그 부위의 피부가 좋아져 그 이후로 피부 미용을 위해 봉토내의 젋은 여인들을 잡아다 그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와 비슷한 시기 영국의 메리여왕과 자웅을 겨루지 않았을까?
한편, 아직까지도 그 진위여부 또는 도덕적 문제, 그외의 여타 다른 문제들로 떠들썩한 황우석 사건을 보면서 난 왜 이 여자가 떠오르던지..
다시,
트란실바니아의 위치를 한번 살펴보자.
지금의 루마니아 서북부쯤 될꺼다.
당시 정황은 어땠을까?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이 되기 전까지 헝가리 왕국은 오스만의 서진을 막는 유럽의 전진기지 역활을 하고 있었고, 러시아가 부상하기전까지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폴란드의 남하를 힘겼게 지켜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폴란드의 유력가문의 딸로써 바토리 가문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비교될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였다, 집안엔 군주와 추기경, 헝가리 수상과 폴란드왕이 있었다고 한다.
이 여인은 헝가리와 폴란드, 오스만 투르크가 전략적으로 만나는 중요한 지점인 트란실바아의 군주에게 시집갔고 얼마후 남편이 죽자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다.
그러자 헝가리는 헝가리의 주요 지점인 트란실바니아의 군주가 폴란드인이 되는게 결코 반갑지 않았을것이다.
여기서 잠시, 동시대의 영국을 보자, 프랑스와 카톨릭 교회가 지지하는 메리여왕이 엘리자베스에 의해 처형되자 엘리자베스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얼마 후 부터 메리여왕의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메리 여왕은 사람을 삶아죽였다더라!"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걸 보고 희열을 느낀다더라!"
등등 결국 여론은 엘리자베스에게 기울었고, 엘리자베스는 전국을 수수한 옷차림과 불쌍하게도 외로운 가여운 여인처럼 국민들에게 어필함으로써 자국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된다.
돈줄을 쥐고 있는 카톨릭 교회와 영국 영토를 군사력으로 제압할수 있는 프랑스 앞에서 엘리자베스에게 남겨진건 금화 한 부대와 고작 1000여명의 근위대가 전부였다.
그런던 엘리자베스에게 여론은 강력한 힘이 되어 카톨릭 교회를 제압하고 프랑스를 누르고 아일랜드 반란을 진압하고 네델란드를 독립시키고 스페인의 아르마다를 격파한다.
자신의 봉토의 인구가 많아봐야 만명을 넘지 않았을 동네에서 무려 600명의 처녀를 잡았다면 인구의 손실이 얼마나 될까?
최대 만명 중 여자는 5000명 대략 평균 수명을 50으로 치고 세대별로 나눠보면 10대는 1000명이다.
그 1000명중에 한세대의 60%나 되는 600명을 잡았다???
그리고 그 성안에서 진상을 조사했던 사람들은 모두 헝가리왕이 파견한 수색대였다, 그 수색대가 조사한걸, 그걸 믿으라고?
결국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헝가리 왕의 음모에 빠진것이다.
자신의 동네의 여자 성주가 자신의 딸들을 잡아다 피부미용을 위해 피를 뽑는다는데 겁나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결국 이 음모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채 역사속의 엽기 행각으로 질겅질겅 잘 씹히고 있는 중이다..
황우석 박사가 어느선을 넘어는지 잘 모르겠다.
나야 머 전문가가 아니니,, 그러나 역사적 사실속에서 이런식의 시선 돌리기는 수도 없이 많다.
단지 황박사의 윤리적 도의적 또는 사기..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