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사느냐가 인격까지도 좌우한다.
샌디에이고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은 점점 번져와서 결국엔 주택가를 덮쳐 수많은 주택들을 전소시켜 버리고 만다.
이후에 KBS에서 이곳을 취재하였다.
재해를 당한 미국인들은 공공건물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낮에는 타버린 자기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재해를 당해 집까지 잃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떤이는 집앞에 이런 팻말을 붙여 놓았다.
"골치 아픈던 바퀴벌레! 이번 기회에 완전 박멸!"
미국인의 여유가 돋이는 팻말이였다.
한편, 얼마전 버마에서 대규모 수해로 많은 이재민을 발생하였다.
엠네스티에서 보내온 책자에는 힘든 버마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막대기 몇개와 함석으로 겨우 지붕을 올린 집에서 살다가,
이번 수해로 그 집에 몽땅 떠내려 가버려서 온 집안 식구들이 길바닥에 나앉아 땅을 치며 울고 있었다.
수십만 달러짜리 집을 화재로 잃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미국인과 굳이 돈으로 따지자면 몇달러 될 것 같지도 않은 함석집이 수해에 떠내려갔다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버마인...
표면적인 모습은 이렇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 미국인과 쪼다같은 버마인...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똑같은 인간이 달라질수 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비롯 그 함석집이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만,
하루벌어 겨우 하루는 사는 버마인들에겐 수많은 세월 고통을 감내하며 겨우 마련한 소중한 보금자리이며,
그것을 잃었을 경우 또 다시 그 고통의 세월을 반복해야만 하고 아무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당장 그날밤을 어디서 날 것이며, 무엇을 먹을 것인지 막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보험회사 및 국가에서 충분히 보상해줄 것이고,
공공시설물에서 약간은 불편하겠지만, 그런데로 지낼곳과 지원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될 것이다.
바로 사회의 안전망의 여부가 사람의 인격까지도 좌우 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