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역사

(고)조선에 관한 의문(에 관한 응답 모음)

메롱씨티 배드맨 2015. 2. 20. 01:55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고)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는 글에 대해 썼던 댓글들을 다시 모아 봄


.........................................................................................



(고)조선은 문헌적 기록으로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최초 국가는 문헌적으로 기원전 2200년에 건국되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고)조선과 중국 모두 문헌으로 역사적 기록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 건국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록을 뒷받침해줄만 이후의 다른 무언가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건국 연대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 기록이 거짓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중국의 역사적 기원 역시 연도를 증명할 다른 뭔가는 없으니깐요.


비단 (고)조선과 중국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 꼼꼼하고 정교하게 남아 있는것은 이집트만이 유일한 사례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건국 연도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것은 그 연도쯤에 국가가 탄생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회적 기반이 갖춰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배달국이니 뭐니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이것은 국가라는 거대사회로 발전하기 전에 그 이전단계로 보이는 군장사회의 흔적이 곳곳에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로의 발전 단계를 차례대로 모두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탄생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회적 토대가 있다고 보고 있고, 이러한 증거적 유물/유적들은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미세하기는 하지만 문헌적 증거, 

역사의 발전 단계를 모두 밟아왔음을 증명해줄 유물/유적의 다양성과 국토내의 일관적 출토 

역사의 발전 단계와 맞아떨어지는 사회 형태의 발전 단계가 

(고)조선의 존재 및 건국 연대를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



(고)조선사가 매우 혼란스럽고 난해해지는 이유중 하나는 이름(주로 지명)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세계 어느 지역의 역사나 다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이름짓기에 매우 보수적입니다. 

즉, 여기 이름과 저기 이름, 예전 이름과 그 이후의 이름이 똑같음으로 인해 후대에 엄청난 혼란과 난해함을 주고 있죠. 


예를들어, 예전에 한니발이 로마원정을 떠난 도시 이름이 "카르타헤나"인데, 한국전쟁때 콜롬비아 군이 출발한 남미의 항구 이름도 "카르타헤나"이죠. 

미국 같은 경우도 유럽의 도시이름을 그대로 가져왔거나 앞에다 "New"만 붙여서 쓰는 등이 이름이 매우 많습니다. 


(고)조선 같은 경우 전체 국가명도 "조선"이지만, "조선"이란 지명도 두곳 이상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평양"이란 지명을 가진 지역도 두곳이 있죠. 

"고구려"도 동명성왕이 건국한 나라이지만, BC 10세기를 기록한 중국문헌에도 "고구려"란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다른 두곳의 역사가 혼재되기도 하는등의 난해함이 존재합니다. 

국내 역사학계에선 소위 "대륙조선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역사성이 학계내에에서 주류로 잡혀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실 (고)조선의 자료는 문헌만이 부족할뿐 유물/유적은 널려있으니깐요.. 


그리고 "위만조선"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지 않습니다. 

연나라의 세력 위만이 (기자의) 조선지역(고조선이란 나라가 아닌)을 찬탈했던 중국의 국가로 보지요..


.........................................................................................



고인돌도 단지 돌덩이가 아니라 그 형태나 방식의 변화 유형으로 딱 그 시대에만 존재했다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중 한 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인돌뿐만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들도 절대 다수가 고조선의 영역에서 출토 되고 있죠. 

고인돌 및 청동기 유물은 그 출토만으로도 군장시대로 봅니다. 

고인돌이 중요한게 아니라 고인돌 + 청동기 유물 등의 상호 교차 검증이 가능한 세트로 그 시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군장시대에서 "통치자 + 율령"이 추가되면 국가시대로 전이 되는 거죠. 

(사회적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증거는 차고 넘치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군장시대의 역사가 길고 증거가 많은 지역에서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겁니다.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작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유물과 증거 실증주의가 아닌 관념적 고대사가 마치 사실인양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점입니다. 

자체적인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이 일제시대에 완성된 고대사 자료를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작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북한이 이미 196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기에 우리나라 학자가 고대사를 확인하려고 북한 서적을 연구했다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죠.


고조선은 증거가 없는게 아니라 단지 모르고 있는겁니다.



...............................................................................................



고조선은 도읍을 총 4번 천도했습니다. 

마지막 천도는 "돌아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알려진 국경선 만큼의 지배력이 있었을까? 

지배력을 측정할수는 없지만, 영토내의 문화의 동질성과 사회구성의 동질성으로 분류했을때, 경상도 맨 끝트머리와 부여 맨 큰자락까지 중국과는 확연히 분류되는 일관성 있는 유물의 형태로 봤을때 단일 문명으로 분류되고 이는 지배력이 모두 미쳤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라고 우리의 조상들이 스스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역사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우리역사라고 말하는데, 후손이 이를 의심한다면 그 역사는 역사를 부정하는 후손의 대에서 끊기겠죠. 


..............................................................................



고조선은 점점 남하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고조선의 건국 초기부터 그 영토와 자리가 이미 세팅된 상태였습니다.

중원세력의 침입으로 옆으로 밀려난겁니다. 

즉, 고조선은 아주 오랜 군장시대를 거치면서 고조선의 영역이 확정된 상태로 국가가 건설된겁니다.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고조선은 국가가 망한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소멸되었습니다. 

기원전 100년경을 전후해 고조선이 망한게 아니라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가 맞는 표현일겁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경우입니다.


(고)조선이 마지막 도읍으로 이동한 것이 기원전 700년경으로 보고 있고, 조선이란 이름이 역사서에 마직막으로 등장한 것은 A.D 300년입니다. 

기원전 2333년부터 A.D 300년까지 존재했던 조선을 같은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