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개신교 정신을 바탕으로 일어선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특징도 있는데, 그중엔 위인을 기억하기 위한 동상이 별로 없다는 점도 있다. 아마도 뭔가 상을 만드는 것이 형상숭배를 꺼려하는 개신교 정신과 위배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워싱턴에는 아주 거대한 좌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링컨의 좌상이다. 상을 만드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미국 사회에서 도저히 만들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중요한 인물이란 의미일까? 수많은 대통령 중에서 왜 링컨만이 특별한 기념관과 좌상을 가지고 있을까?
< 링컨 기념관내 링컨 대통령 좌상 >
사실 링컨은 현실 대통령으로서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서 한 것 이라곤 전쟁밖에 없다.
1861년 3월에 대통령에 취임해서 1861년 4월 12일 섬터 요새에서 전쟁이 시작되어 1865년 4월 9일 애포머톡스에서 리장군이 항복했고, 4월 14일 암살 당했으니 대통령으로 있는 내내 전쟁밖에 한 것이 없었다.
자신의 국가를 내전으로 빠뜨린 대통령을 어찌 성공한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미국은 이런 링컨을 유독 특별 대우 하고 있는걸까?
링컨은 노예해방을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예해방의 인류사적 의의는 뒤로 제껴두고 당시 미국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산업화로 상공업이 주요 산업이였던 북부지역은 유럽과의 무역이 매우 중요했다.
산업교역이라 하면 그 대상자는 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였는데, 문제는 유럽국가들은 이미 노예해방을 완료한 상태였고,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윌포버스를 포함한 웨슬리 목사님 등 영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의 적극적인 주도로, 영국은 1834 찰스 그레이 수상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소유주에게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배상을 하고 노예를 모두 해방했고, 스페인도 영국보다 훨씬 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경쟁력이 약한 미국제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산은 지금의 중국산의 위치 정도 밖에 안되었다..)에 대해 압력이 가중되던 차에 노예제로 인한 America discount까지 덤으로 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부의 산업은 오로지 목화산업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부의 목화산업은 영국의 면화용 산업기계 및 원부자재의 수입에 의존적이였다.
즉, 남부는 수입산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자유 무역주의를 선호했고,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여 노예가 반드시 필요했다.
1804년에 최초로 노예들에 의해 건국된 미국 남쪽, 바다 건너 아이티를 미국 남부 장로교회 목사님들이 사탄의 국가라고 경멸했던 현실적 이유도 이런 것에 기인했다.
결국 노예해방의 이면에는 남과북의 경제적 이익의 충돌이 있었다.
남북전쟁 발발전부터 이미 지속적으로 남과북은 무장 집단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고, 링컨 대통령은 이미 타협이 불가능한 이 문제에 대해 시대가 요구하는 소위 손을 더럽히는 임무를 완수할 밖에 없었다.
그럼, 이미 다른 나라들은 다 끝낸 노예해방을 했기 때문에 기념관에 좌상을 만들어줬을까?
남북전쟁에서 이미 객곽적인 전력에선 북군이 남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병참, 무기 산업, 인구, 해군력에서 남군은 북군에 비할바가 못 되었다.
모두들 전쟁은 몇 달 내에 북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여겼다.
링컨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초기 병력을 소집하면서 복무기간을 불과 3개월로 정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북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전쟁을 끝내려는 남군의 리장군이 북쪽으로 침공한 것을 게티스버그에서 막아내면서 전쟁 시작후 일년이 훨씬 지나서야 최초의 승리를 거뒀다.
링컨대통령은 얼마나 기뻤던지, 즉시 게티스버그로 달려갔고, 거기서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된다.
<게티스버그 연설>
….........................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유라는 이념으로 이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헌신한 한 새로운 나라를 이 대륙위에 탄생시켰습니다.
현재 우리는 엄청난 내전에 휩싸여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세운 이 나라가 존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내전의 격전지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격전지의 한 부분을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처로 마련해주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신성화하거나 정화할 수도 없습니다.
죽기를 무릅쓰고 여기서 싸웠던 용사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것에 아무것도 보태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거의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에 대해서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여기서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진보시킨,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일을 수행하는데 헌신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대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이곳에서 영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힘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도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누리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바로 이 연설문에 링컨대통령의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들 하고 또 그렇게 배운다.
그러나 민주주의 어원 democracy(다수에 의한 지배?)이 그리스어에서 온 것 말고는 다른 의의는 없다.
상위 소수의 지배층에 의한 지배가 그리스의 민주주의이지만, 그 당시 세계 상당 부분이 이런식의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당장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고구려의 “제가회의”, 백제의 “정사암 회의”, 신라의 “화백회의” 또 몽골의 쿠릴타이 등등 모두 상위 지배층들의 협의체 들이다.
공화정이냐 왕정이냐의 차이가 있지만, 어차피 소수 독재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겐 그놈이 그놈일 뿐이다.
많은 시간 동안 민주 정치체제와 사상, 또한 “권리장전”, “권리청원” 등과 같은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발전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는 없었다.
링컨의 연설문 속에는 바로 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있다.
“모두가 평등한 국민들의 참여에 의해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국민들 스스로가 수행하는 체제를 통해 통치하는 국가” 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정체성인 것이다.
즉, 링컨은, “미국은 무엇인가?”에 답을 낸 대통령이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노예를 해방시켰기 때문에 기억되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가 미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웠고, 그런 미국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워싱턴 장군 기념탑” 맞은편, 링컨 기념관에서 의자에 앉은 링컨의 좌상을 봐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또, 우리는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으므로, 그 체제의 진정한 가치와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링컨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뭔가?
또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뭔가?
유럽이나 미국은 기독교적 사회문화의 바탕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미 그들의 생활속에는 기독교적 전통은 버릴수 없는 근본 바탕으로 작용한다.
버릴수 없는 근본 바탕이라는 것은 먹고 마시는것 자는것 일상생활에서의 관용적 표현, 생각하는 방식 등등으로 “난 내일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야”라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교적 사회문화의 우리사회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의 기독교식 전통을 기대해선 안된다.
이것은 반대로 “난 내일부터 기독교인이야”라고 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사회는 새로운 세상이다.
기독교가 주류 종교집단을 이루고 있는 나라중에 기독교적 사회문화가 없는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
우리의 전통적 사회문화와 융합하면서 어떻게 기독교 정체성을 세우느냐 하는것,
이것이 지금 이땅에서의 진정한 전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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