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역사

완벽한 복지국가 에굽

메롱씨티 배드맨 2011. 4. 10. 15:00

에굽, 즉 이집트는 BC.3100 부터 시작되어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정복하기 전까지 총 30개의 왕조를 이루었다.

성경에서는 이집트의 왕을 바로로 통칭하여 표기하고 있어, 이집트의 어떤 왕이였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움 점이 있다

 


일단, 성경에서 요셉 이전의 이집트를 보면, 대략 1~12왕조 까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4왕조의 작품이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가장 거대하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하여 이 피라미드를 보고 엄청난 노예가 동원되었을 것이다라고 쓴 것이 마치 정설이 되어 고대 이집트가 엄청난 노예제 국가인량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다 1990년대 발굴팀의 조사로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였음을 밝혀냈다.

즉, 이 피라미드는 노예가 건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는 고대 수메르와 더블어 엄청난 농업생산력을 자랑하던 지역이다.

수메르는 과도한 지력상실로 땅이 염화되면서 문명 자체도 붕괴해 버렸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다.

이집트는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의 여름은 고온건조, 겨울은 저온다습하다.

아프리카의 우기는 겨울이고, 이집트는 북쪽 지중해 연안이 겨울에 약간의 비가 오는것을 제외하면 일년내내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럼 뭘로 농사를 짓는가?

나일강의 수원을 기반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우기에 나일강의 수원인 빅토리아 호수에 비가오면 나일강은 범람한다.

범람의 시기가 되면 모든 농지가 물에 잠겨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다, 그 기간은 대략 3개월 가량이 된다고 한다.

이 홍수는 우리나라의 홍수와 다르게 이집트인에게는 축복의 홍수이다.

추수가 끝난후에 닥친 겨울 홍수는 농토를 새로운 흙으로 바꿔버리고 물속에 있는 부유물들이 토지위에 가라앉아 양분이 된다.

그래서 홍수가 끝난 이후의 농지는 새로운 땅이 되어 지력이 자연 회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사처럼 봄에 거름치고 무기비료 뿌릴 필요없고, 몇년에 한번씩 땅을 쉬게 해주는 것 없어도 항상 새땅처럼 농사가 잘되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 홍수 3개월의 기간에 놀게 되는 국민들을 위해, 말하자면 공공근로의 형태로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한 것이다.

피라미드는 일년에 한번 약 3개월의 기간동안만 건설작업이 이뤄지며, 이 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 인근에 머물며 국가가 제공하는 근로사업과 식략 배급,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집트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매우 부유하였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식량배급뿐만 아니라 집과 토지, 의복과 미용실 서비스, 심지어는 화장품까지 국가 배급품목에 있었다.

이집트의 기록에 의하면 건설작업에 투입된 노예들이 화장품 배급이 늦어져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이집트에도 권력투쟁이 엄청났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상층부의 일이었고, 또 권력을 잡은 세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위해 보다 더 좋은 복지정책을 펼쳤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정책들이 이집트의 재정을 악화시킨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떤 이집트의 왕조도 복지정책을 축소하지는 못한듯 하다. (나중에 페르시아와 알렉산더의 정복 이후엔 일반적인 국가체제(세금을 걷고, 복지는 별로 없는)로 진입하고 말았지만..) 복지정책 축소를 시도한 왕조는 대부분 단명하고 말았고, 그래서 이집트의 왕조는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나일강 남부의 금광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 금광지역에 수많은 신전을 세워 금광이 보호되기를 바랬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나가 유대인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바로는 유대인들이 작업을 어렵게 하는 징벌을 내리는데, 아무 생각없이 읽다보면 바로가 나쁜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모세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보자면 거의 반역이다.

아무리 민족이 다르다고 할찌라도 그런 행위를 자유롭게 봐줄 국가가 인류역사상에 있었을까?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모세는 능지처참을 당하고 그 일가족을 삼족을 멸하고 공모한 유대인들은 남자는 북방으로 보내 평생 중노동에 시달리고 여자는 관노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왕이 취한 조치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아~주 유약한 보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렇게 약한 징벌이 내려질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집트인 자체가 노예에 대해 매우 관대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로마시절 로마의 노예는 대부분 노예로써 상한 기간이 있었다.

어떤 노예든 15년 이상 노예로 있을수 없고, 노예가 해방되면 반드시 퇴직금을 지불해야 했다.

노예로 지내는 동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살아야하는 의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예도 주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분명히 있었던듯 하다. (물론 악덕한 주인은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로마도 이집트의 노예제도보다 더욱 강력했다고 하니, 이집트의 노예제도는 굉장히 관대했었음을 알 수 있고, 기본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노예를 혹독하게 다룬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듯 하다.

그냥 장기근로 계약을 맺은 근로자 정도였을 수도 있겠다.)

 

그 이후에도 출애굽기에는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파를 먹을수 없다는 불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의 파는 강장제로써의 역할을 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이 강장제를 먹었던 것이다.

민수기에도 이집트에서 처럼 고기를 못먹는다는 불평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근대에 접어들기 전까진 굶어죽는 것이 매년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이 인류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는 노예들조차 강장제와 고기를 먹고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의 직업을 보면, 좀 쌩뚱맞은 점이 있다.

열두명이나 되는 제자중에 농부는 없다. 근대 이전 인류 역사의 90%이상이 농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중엔 농부가 없다.

왜?

가나안이란 땅이 젖과 꿀이 흐르기엔 농사를 짓기에 매우 척박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농토와는 비교할수 없이 메마른 땅이다. (요단강 근처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유대인들은 모조리 목축업이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사회란 항상 농업이 있는 곳에서 발생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중 가장 많은 직업군은 세리이다.

(일부 목사님들은 세리를 세무 공무원이고 하시지만, 사실상 세리는 세금을 미끼로 하는 고리대금업자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은 출애굽한 유대인들을 가나안땅에 들여보낼 생각이 없었을듯 하다.

그럼 왜 출애굽을 원하셨을까?

그건 애굽(이집트)란 곳이 너무나 완벽한 곳이기 때문이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살리려 애굽에 보냈는데, 그랬더니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니,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다시 불러낼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막상 본토 고향인 가나안은 애굽에 견줄봐가 못 된다.

에굽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유대인들의 광야에서의 행적을 보라, 그 사람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에굽은 모르고 광야에서의 힘들 삶을 살았던 그 후손들에겐 가나안이 축복이였겠지만, 에굽의 삶을 알던 사람들에게 가나안은 실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P.S :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자신의 식구들을 모두 이집트로 불러온다.

이집트의 역사속엔 "힉소스인의 침입"이 있다.

이들이 유대인이냐 아니냐 하는 공방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외부 민족의 집단 이주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한듯 하다.

또한, 이집트의 역사속에도 7년간의 가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집트는 비가 안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7년간의 가뭄이 이집트의 사정은 분명 아닐것이다.

어쨌든 식량을 찾아 대량으로 이민족이 진입하게 되고 성경에 나오는 지역과는 약간 다르지만 나일강 하류에 이 이주민들을 위한 정착촌을 제공했다.

그 지역은 나일강중에서도 가장 좋은 지역이였고, 문제는 이 이주민들이 가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를 떠날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오히려 이집트 왕조에 대항해 아예 이집트 정권을 남쪽으로 몰아버리고 자신들이 상이집트를 점령해버리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이집트는 남북으로 갈리게되고 남이집트가 이 침입자들을 몰아내기까지 무려 18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왜 요셉때는 지배자의 가족으로 등장했던 유대인들이 모세가 출애굽하던 시절에 노예가 되어 있었을까?의 힌트가 될수도 있지 않았까? 즉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